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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혈관질환 주범은 인슐린 저항성…"유연한 키토제닉 식단으로 잡아야"
건강한 식단은 질병 예방과 신체 유지에 기본이 된다. 식습관에 따라 질환이 생기거나 개선되기도 하는 만큼, 최근에는 다양한 식단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체중 감량은 물론 혈당과 혈중 지질 수치 조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키토제닉 식단'이 주목받고 있다.
키토제닉 식단은 탄수화물은 줄이고 지방 섭취를 늘리는 방식으로, 적은 양으로도 포만감을 유지하면서 건강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지방 위주의 식단이라는 점에서 혈관 건강에 해롭지 않을지 우려하는 이들도 있는데, 전문가들은 유연하고 건강하게 실천한다면 충분한 이점이 있다고 말한다. 이에 가정의학과 전문의 류호성 원장(연세이너힐의원)과 함께 키토제닉 식단의 오해와 진실을 짚어봤다.
탄수화물 섭취 최소화하는 '키토제닉 식단', 체중 낮추고 혈당∙혈관 건강 개선
'저탄고지' 식단은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고 지방을 늘리는 방식인데, 키토제닉 식단은 그보다 훨씬 엄격한 기준을 따른다. 일반적인 저탄고지 식단이 탄수화물 비중을 45% 미만으로 제한하는 반면, 키토제닉 식단은 이를 10~20% 수준으로 낮춘다. 탄수화물 섭취를 최소화해 체내 대사를 지방 연소 중심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포도당 대신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게 되고, 체지방이 줄어들면서 체중 감량 효과도 나타난다.
이 식단의 효과는 체중 감량에만 그치지 않는다. 탄수화물 섭취를 제한하면 혈당 스파이크와 인슐린 저항성, 만성 염증 등 대사질환의 주요 원인을 차단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류호성 원장은 "체중과 혈당, 혈관 관리를 위해서는 포화지방을 제한하는 것보다 정제 탄수화물, 특히 설탕의 과잉 섭취를 줄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논문도 나온 바 있다"라며, "혈관 건강이나 혈당 조절에 있어 지방보다는 탄수화물 과잉 섭취로 인한 인슐린 저항성이나 콜레스테롤 산화 등이 더욱 큰 위험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류 원장은 "지나친 탄수화물 섭취와 그로 인한 염증, 혈관 손상이 동맥경화를 유발해 심혈관질환 위험을 높이는만큼, 만성적인 고인슐린혈증이 문제의 핵심"이라며 "인슐린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세포 내 에너지 대사가 급격히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활성산소가 많이 만들어져 세포를 손상시킨다. 동시에 포도당의 당화 반응은 몸에 염증을 유발한다"고 설명했다.
"포화지방이 문제일까?"…관건은 포도당과 인슐린 저항성
키토제닉 식단은 하루 섭취 열량의 약 70%를 지방으로 채우는 고지방 식단이다. 기름진 육류, 버터, 치즈 등 포화지방이 많은 식품이 허용되다 보니, 지방 섭취가 늘면서 혈관 건강에 해롭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들도 많다.
이에 대해 류호성 원장은 "섭취량은 개인의 대사 특성에 맞게 단계별로 조절할 수 있고, 혈당 스파이크를 피하기 위해 탄수화물을 성공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목표"라고 강조했다. 특히 "포화지방 자체의 심장병 연관성은 생각만큼 명확하지 않고, 무엇으로 대체하는지에 따라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다수의 대규모 연구를 검토한 결과 포화지방 섭취와 심장병 발병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를 찾지 못했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는 상황.
포화지방이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은 1950년대 미국 생리학자 앤셀 키이스(ancel keys)가 제시한 가설에서 비롯됐다. 그는 포화지방이 혈중 콜레스테롤을 높이고, 이것이 심장병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주장했으며, 이후 1970년 '7개국 연구'를 통해 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해당 연구는 특정 국가를 의도적으로 제외한 채 결과를 도출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1989년 재분석 결과에서는 심장병 사망률과 가장 큰 관련이 있었던 식이 요소가 포화지방이 아닌 설탕 등 '단 음식' 소비량이었다는 보고도 나왔다.
류 원장은 "2010년대에 들어 여러 메타분석 논문이 포화지방 섭취와 심혈관질환 사이의 상관관계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놓고 있다"며 "포화지방을 많이 먹어도 나쁠 것이라는 근거는 부족한 상황이며, 그보다는 탄수화물 과잉과 혈당 스파이크, 인슐린 저항성, 콜레스테롤의 산화 등이 혈관 건강에 더욱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했다.
포화지방은 인체에 꼭 필요한 지방…"지방의 질을 살펴야"
포화지방은 건강에 해롭다는 오해로 인해, 키토제닉 식단을 실천하면서도 이를 피하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류호성 원장은 "포화지방 자체가 건강에 나쁜 지방이 아니며, 인체의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는 데다 세포막 안정화, 신경세포 보호, 피부 장벽 유지 등 다양한 생리 기능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인체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일정 수준의 섭취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진짜 주의해야 할 것은 '지방의 양'이 아니라 '지방의 질'이다. 특히 가공식품, 튀김, 쇼트닝 등에 포함된 트랜스지방은 체지방을 늘리고 혈중 ldl 콜레스테롤을 높이며, hdl 콜레스테롤은 낮추는 등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지방 중심의 식단을 구성할 때는 트랜스지방 섭취를 피하는 것이 핵심이다. 아울러 햄, 소시지 등의 가공육을 피하고 적절한 식이섬유 섭취를 같이 해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류 원장은 "지방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기보다는 식품의 가공도, 조리법, 보관 상태까지 함께 고려하는 통합적인 시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식물성 기름의 경우 발연점이 낮고 산화되기 쉬워 고온 조리 시 트랜스지방이나 산패유로 변질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아보카도유, 코코넛 기름, 라드(돼지기름) 등은 발연점이 높고 구조가 안정적이어서 고온 조리에도 비교적 안전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오메가-3 지방산과 같은 불포화지방산의 충분한 섭취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메가-3는 강력한 항염 작용으로 염증성 질환 예방에 효과적이며, 오메가-6 지방산은 과잉 섭취 시 오히려 만성 염증을 유발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류 원장은 "오메가-3와 오메가-6의 비율을 1:4 이하, 최대 1:1 수준으로 맞추는 것이 염증 억제와 대사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장기적 유지 어렵다면 '유연한 방식의 키토제닉 식단'이 도움 돼
키토제닉 식단을 단기적으로 시행하면 △체중 감소와 식욕 억제 △혈당 감소 및 인슐린 민감도 향상 △혈중 중성지방 감소 △혈압, 염증 수치 감소 등의 이점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지방 위주의 식단을 엄격하게 장기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부에서는 '키토 플루(keto flu)'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하며, 영양 불균형과 사회적 제약으로 인해 지속 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다. 이에 대해 류호성 원장은 "키토제닉 식단을 장기간 유지하고자 하는 경우, 혈당 스파이크를 피하는 '유연한 키토제닉 식단'이 도움이 될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지방과 단백질 중심의 식단을 유지하되, 순탄수화물의 비율은 줄이고 충분한 채소 섭취를 통해 식이섬유 섭취를 늘리는 방식으로 식단의 영양소 균형을 조절하는 것이다. 탄수화물을 섭취할 때 알아둘 점도 있다. 혈당 스파이크를 피하기 위해서, 한 끼에 몰아서 먹기보다는 나눠서 먹는 것이 좋다. 또한 설탕이나 밀가루 등의 정제 탄수화물은 피하고, 채소류 중심으로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신진대사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 게다가 다양한 채소를 충분히 섭취하면 키토제닉 식단 중 결핍되기 쉬운 비타민이나 미량 영양소를 보충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건강 상태 정기적으로 점검 필요
유연한 방식의 키토제닉 식단은 대사적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장기적인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현실적인 접근이다. 류호성 원장은 "염증 수치의 만성적 저하, 중성지방과 내장지방 감소, 혈당과 인슐린 변동 완화, 에너지 효율 향상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사람마다 대사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하루 총 탄수화물 섭취량을 100g 이하로 줄이고, 정제 탄수화물을 피하는 수준의 저탄수화물식부터 단계적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점차 지방과 단백질 섭취를 늘리고 탄수화물을 줄이면, 체내 대사가 지방 중심으로 전환되며 혈당과 인슐린 수치가 안정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유연한 방식으로 식단을 이어 나가는 것에 대한 장기적인 연구가 더 필요하기 때문에, 식단 조절을 장기간 이어 나가고자 하는 경우라면 콜레스테롤 수치, 염증 수치, 간 수치 등에 대한 정기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며, 의료진과 함께 건강 상태와 식단 경과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류 원장의 조언이다.
건강 상태에 따라 키토제닉 식단이 금기이거나 위험이 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췌장염, 간부전 등 중증 간질환자 △담낭 절제술을 시행한 사람 △과민성 장 증후군 등 소화기 장애가 있는 사람 △지방 대사 관련 유전질환이 있는 사람 △신장질환자 △고지혈증 또는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 환자 △임산부, 수유부, 고강도 운동선수, 섭식장애 병력자 등이라면 반드시 의료진과의 상의를 거친 후에 식단을 조절할 것을 권했다.
키토제닉 식단을 통해 체중 감량에 성공하고 대사 기능이 안정되어 건강한 상태가 되었다면, 반드시 그 식단을 고수할 필요는 없다. 대사 상태가 회복될 때까지는 일정 기간 식단을 실천하되, 이후에는 개인의 건강 상태와 생활 방식에 맞춰 보다 균형 잡힌 식단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